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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으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폴란드의 위상이 180도로 달려졌다.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 전만 하더라도 ‘폴렉시트(폴란드의 EU 탈퇴·Polexit)’가 거론될 만큼 EU와 불협화음을 냈지만, 개전 후 폴란드가 서방 무기의 공급 통로 역할을 맡으며 우크라이나의 대(對) 러시아 항전의 요충지로 떠올랐다. 이는 마찬가지로 ‘법의 지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EU의 눈엣가시였던 헝가리가 친(親) 러시아 행보를 이어가며 EU와 대척점에 선 것과 대비된다. 폴란드와 헝가리의 유럽 내 입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준으로 엇갈린 셈이다.
EU, 폴란드 ‘코로나 기금’ 동결 해제 수순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 1일(현지 시간) 사법부 독립성 저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폴란드의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치가 EU 집행위가 지난해 ‘EU 공통 가치인 법치주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동결했던 총 360억유로(약 47조 8000억원) 규모 코로나 19 경제회복기금을 폴란드가 다시 받을 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앞서 EU는 폴란드에서 극우 정당 ‘법과 정의당’이 2016년 집권한 뒤 ‘사법 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판사 지명권을 하원에 부여하고, 대법원에 판사 징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이를 문제 삼아 코로나 19를 대처할 예산 지원을 끊은 것이다. EU 조치 직후 폴란드는 즉시 항소했지만, 유럽사법재판소(ECJ)는 EU 결정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외려 폴란드는 2021년~2027년에 걸친 1조 8000억 유로(약 2454조 원) 규모의 EU 7개년도 예산에 대해서도 불이익을 받을 위기에 처했었다.
상황을 뒤집은 것은 지난 2월 개전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와 약 600km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인도적 지원과 무기 수송에도 결정적 통로 역할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해 3월 유럽 순방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도 ‘나토 동부 최전선’인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또 우크라이나 난민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370만 명 이상) 수용했으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대러 제재에도 적극 찬성했다. 지난달에는 두다 대통령이 개전 후 외국 국가 원수 중 처음으로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1㎝도 러시아에 내어줘서는 안된다”고 연설하며 우크라이나 국회의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폴란드가 전략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지지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NYT는 “이런 행보들이 쌓여 EU의 동결 조치 해제를 이끌어 냈다”고 논평했다.
대러 제재 ‘어깃장’ 놓은 헝가리는 여전히 눈엣가시
폴란드와 정반대 입장에 놓인 것이 헝가리다. EU 집행위는 폴란드와 달리 헝가리에 대한 코로나 19 경제회복기금 동결 조치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양측 간 갈등 수위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석유의 65%가 러시아 송유관을 통해 제공되는 헝가리는 EU가 러시아산 원류 금수 조치를 단행하는 것에 지속적으로 반발했다. 결국 EU는 수입 중단 시한 연장 등의 제안에도 헝가리의 반대를 꺾지 못하고 해상으로 수입하는 석유만 제재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또 EU 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는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는 제재하지 않기로 했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끝까지 헝가리가 EU 결정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전쟁 전 성소수자 권리 제한, 동성 커플 입양 금지 등 인권침해적인 정책으로 EU와 잇따라 대척점에 서온 헝가리가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서도 EU에 계속 어깃장을 놓은 셈이다.
친러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또한 EU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유럽에서 유일한 사람”이라고 그를 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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